아버님/어머님/아드님/따님’이란 말

 

 
어느 일가 운영 홈페이지 속 ‘예절마당’에 퍼서 실은 글로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나는 나의 강의실, 문중에서 그렇게 가르치지 아니한다.


[<님>이라는 말은 며느리가 사용하는 <며느리 전용어>입니다. 아들딸은 <아버지>·<어머니>라는 말로 부르고, 며느리는 <아버님>·<어머님>이라는 말로 부르는 것입니다. 시집간 며느리는 시당(媤黨)사람들에게 <할아버님>·<할머님>·<아버님>·<어머님>·<아주버님>·<아주머님>·<아지벰>·<되렴>·<형님>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글 배우는 서당 선생을 부를 때 그것이 <선생님>으로 되었습니다. 그 뒤에 절간 승려를 부를 때 <스님>으로 되었습니다. 서당 선생을 부를 때 <님>을 붙여서 부르나, 부르지 아니하고 3인칭에서 일컬을 때는 <선생> 만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사람을 존경할 때는 <동고선생>으로 일컫게 됩니다. <동고선생+님>으로 말하면 유치원생 말하기로 됩니다. <님>이라는 말은 그 사용처를 알아야 됩니다. <포은>이라고 해도 좋고, <포은선생>이라고 해도 좋은데, <포은선생님>이라는 말은 유아어(幼兒語)로 된다는 말을 하고자 합니다.
아부꾼들이 <아들님>·<딸님>·<며늘님>이라는 패륜말(悖倫語)을 조작해서 인륜(人倫)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부모를 업신여기는 <아들님>·<딸님> <며늘님>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그 <부모>가 살자하니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나라에 임금이 있기에 <신하>가 있게 되고, 집에 <부모>가 있기에 <자식>이 있게 되도록 만들기 위하여 압존법(押尊法)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노인>을 무너뜨리는 불공말을 사용하면서 노인 복지를 한다고 노인 앞에 다가서고 있습니다. <언어교통순경>이 없다가 보니, 언어가 파괴되고 있는 것입니다. 공기가 더러워져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효도언어>가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효도언어보존회>가 일어나야 됩니다.
광복 후 무식한 사람이 학교에서 <님>을 <높임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님>이 <높임말>이 아닙니다. <며느리말><종말>로 개발된 것입니다. <님>이 <높임말>이라고 하니, 아부꾼들이 기뻐하면서 <아들님>·<딸님>이라는 <패륜말>을 조작해 내는 마구잡이 세상이 된 것입니다.

사장을 보고 <아들이 몇입니까>라고 말해야 될 것을 <아들님이 몇입니까>라고 말하는 아부꾼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아부꾼을 막으려고 나온 법률 이름이 <압존법>입니다.
아부꾼이 소인배이기에 <바른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들님>·<딸님>·<며늘님>으로 되니, 부모 자식 사이가 동급으로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른·아이가 없어진 세상으로 된 것입니다.
무식한 사람이 <딸님>이라는 말로 빗글(碑文)을 짓기도 하고, 중국글 비문<女>를 <딸님>으로 번역하여 책으로 내어놓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손자님>이라는 말이 나오게 될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날이 멀지 않았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


1. <아버님, 어머님>은 ‘종(노예)’이나 다름없는 계층인 며느리가 시어른을 높여 부르기 위한 호칭어 내지는 지칭어이므로 아들딸은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정말 말이 되지 아니한다.

2. <아드님, 따님, 며느님> 등 말은 요사이 아부꾼들이 조작한, 부모를 업신여기는 패륜말이니, 남의 자식이더라도 <아들, 딸, 며느리>라 해야 한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다.


물론 살아계신 내 아버지, 어머니를 직접 호칭하거나 남에게 지칭할 때 ‘아버님/어머님’이라고 하지 아니하는 것이 예절에 맞다. 그래서 옛날에 행신하던 경상도 지역 집안 자제들은 ‘아버지/어머니’ 연령층 이상 존장이나 남에게는 압존법(壓尊法)의 말을 써서 ‘집의 아배/집의 어메’ 등이라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출타한 자식이 ‘부모/조부모’께 부치는 편지에 ‘아버님전상살이/父主前上白是/어머님전상살이/母主前上白是/할어버님전상살이/祖父主前上白是’ 등이라 했고, 지금껏 도서관의 한말(韓末), 개회기(改化期)의 ‘편지투’에는 한결같이 그렇게 되어 있다. 이 때의 '부주(父主)' 등은 중국 문화로부터 유입된 중국어 한자어가 아니고 우리 고유의 한자어로 '이두향찰식식(吏讀鄕札式)의 한자어인데, 이 때 '주(主)'자의 훈석(訓釋)을 '님주'자라 한다. 더욱이 ‘부모’의 ‘영전(靈前)에 올리는 제문(祭文)에서는 당연히 <아버님/어머님>이었고, 특히 출가한 딸이 친정 부모를 위한 대소상,  기제사(忌祭祀) 등에 따로 제수(祭需)를 준비하여 치전(致奠)하는 예에서 ‘한글제문’을 지어 올렸는데, 당연히 <아버님/어마님>이라 하였다.  


이 글을 인터넷에 올린 위 예시(例示) 글 주인은 ‘가정 언어/남남 언어/효도 언어’ 운운하면서 언어 예절을 바로 지키는 가정을 소위 ‘행신(行身)을 잘하는 덕행(德行) 가문’이라 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부모’를 위한 바른 호칭 내지 지칭어로 필요한 경우인 ‘아버님<父主>/어머님<母主>’도 바로 사용할 줄 모르고, 남의 ‘아들/딸’을 높여 부르는 ‘아드님/따님’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행신할 줄 아는 예문가(禮文家)’가 아니라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중국 문화에서도 예문(禮文)의 겸사(謙辭)로 ‘내 자식’은 ‘개돼지-돈견(豚犬), 돼지새끼=돈아(豚兒)’라 하면서 남의 자식은 ‘영식(令息), 영윤(令胤), 영애(令愛)’라 높이지 않았던가?


만약 ‘아버님/어머님’이 그렇게 몹쓸 말이고, ‘아드님/따님’ 등이 패륜이 되는 호칭, 지칭이라면 당연히 ‘할아버님/할머님/아주버님/아주머님/형님/아우님/누님’ 등등의 말이 같은 부류(部類)가 될 것이므로 우리 언어 예절(禮節)에 천지개벽 같은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아니함을 보이기 위하여  ‘한할머님(증조모)/할아버님/할머님/아바님/아버님/아들님/따님/작은아드님=아우아드님/형님/누님/아우님/아주버님/아주머님’ 등의 말이 지금으로부터 560여 년 전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시절 이래 연면히 이어져 내려온 말이며 필요에 따른 적절한 호칭어였고, 지칭어였던 증거를 다음에 열기(列記)하고자 한다.


□한할마님(曾祖母)

山南의 한할마님 長孫夫人<小學諺解, 六,26>


□한아바님(祖父/할마님(祖母)

한아바님ㅅ 棺을 메삽아지이다<月印釋譜 十,10>

할마님 唐夫人이<小學諺解, 六,26>


□아바님/아버님/어머님

靑衣 기별을 삷아늘 아바님 깃그시니<月印千江之曲 23>

아바님이 손 드르샤 부텻 발 가르치샤 셜운뜻 업다 하시니<月印釋譜 十,2>

아바님 뒤해 셔샤 <龍飛御天歌, 28>

아바님ㅅ긔와 아자마님ㅅ긔와<釋譜詳節, 六, 1>

아바님 업으신 일은 간댱이 버히는 듯하나<癸丑日記, P.88>

이 偈 다 니르고 아바님ㅅ긔 삷으되<月印釋譜 十八, 34>

어머님 들으신 말 엇더하시니<龍飛御天歌, 90>

앉음 걸음에 어마님 모르시니<月印千江之曲 16>

어머님을 濟渡하여 네 가짓 受苦를 여희어<釋譜詳節, 六, 3>

어마님께 오삽더니< 月印千江之曲 23>

이제 어마님ㅅ 힘이 아프게 못하실세<內訓, 初刊, 1>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鄭松江, 訓民歌>


□아드님/따님

아드님 誕生하시고<月印千江之曲 31>

아들님이 나샤 나히 닐구비어늘 아바님을 무르시니<月印釋譜 八,34>

따님 나코 그 아비 죽거늘<釋譜詳節, 十一, 40>


□아우아드님-<작은아드님>

아우아드님은難陁ㅣ라<<月印釋譜 二,1>


□형님/누의님

원판 형님하(院判哥)<朴通事諺解, 初,上,7>

누위니믈 어럿더니<三綱行實圖, 忠렸, 25>

누으님으란어엿비 고<癸丑日記, p.34>


□아우님

淨飯王ㅅ 아우님은 白飯王과 …甘露飯王이라<<月印釋譜 二,1>


□아자바님/아자마님

아자바님 孝寧大君<楞嚴經諺解, 跋>

아바님께와 아자마님께와<<釋譜詳節, 六, 1>

아자마님은 大愛道를 이르시니<<釋譜詳節, 六,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