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姊妹, 姉妹)라는 말을 여자 끼리는 못 쓰는가?
인터넷에서 언어 예절 카페를 운영하는 어떤 분이 ‘자매(姊妹, 姉妹)라는 말은 남자가 여자 쪽을 일컬을 때나 가능한 것이므로 여자끼리는 ‘여형제(女兄弟)’라 해야 한다고 한 모양이다. 지인(知人)이 어디서 그 내용을 듣고 정말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나의 강의실이나 문중(門中)에서 그렇게 가르치지 아니한다. 혼자만의 독단, 억견(臆見)은 ‘가가예문’에서나 통한다. 꼭 그렇게 생각하여 말하도록 하려면 집안 아랫사람들에게나 가르쳐 사용토록 하면 누가 뭐랄 사람이 없으려니와 세상 사람을 혼란케 해서는 안 된다.
한 마디로 ‘자매(姉妹)’는 남자인 ‘오라비, 아우’가 ‘누나, 누이’를 일컬음일 수도 있지만 여자인 ‘언니, 누이’가 서로를 일컫는 말이다. 남자 '오라비/아우'와 여자인 '누나/누이' 사이의 관계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고, '여자'인 '언니/누이'의 관계를 일컫는 데에서도 함께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남자’가 ‘누나 남편, 누이 남편’을 ‘자형-매형, 매부-매제’라 하고, 중국 사람이 동일 개념의 친속(親屬)을 ‘姊夫(姊壻, 姊丈), 妹夫(妹壻, 妹丈)’이라 한 것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중국 고대 기록에서 예를 들어 ‘한서(漢書), 외척(外戚), 효무이부인전(孝武李夫人傳)’에서 “夫人姉妹讓之”란 표현이 보이고, 여사서(女四書) 중 후한(後漢) 조태고(曹大家)의 여계(女誡) 가운데의 저자 약전(略傳)에서 반소(班昭)의 두 오라비를 ‘장형/차형(長兄班固作前漢書,未畢而卒,昭續成之,次兄班超,入鎭西域,未蒙招還,昭伏闕上書)’이라 한 예들 또한 고려해야 한다.
우선 중국 고대의 설문(說文)에서는 ‘姊女兄也-從女?聲, 妹女弟也-從女未聲’이라 하여 그 호칭 주체의 ‘남녀’를 구분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13경(十三經)의 하나인 ‘이아(爾雅)’의 ‘석친(釋親)’에서 ‘姊男子謂女子先生,後生爲妹’라 하였는데, 그것이 ‘생질(甥姪)’을 뜻하는 고어(古語)로 ‘출(出)’을 ‘男子謂姊妹之子’라 하고, 또 ‘姪’을 ‘女子謂昆弟之子’라 할 때처럼 ‘호칭’하는 주체를 ‘남녀’로 구분하였으므로 ‘자매’는 ‘남자’가 ‘누나, 누이’를 칭하는 말로만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그러나 백호통(白虎通)에서는 호칭의 주체를 특히 한정하지 아니하고 “女子先生爲姊,後生爲妹”라 하고 있음도 알아두어야 한다.
‘자매’가 서로를 호칭하는 말이 단지 그것뿐만이 아니라 이미 고대(古代)의 이아석친(爾雅釋親), 설문(說文) 등에서 ‘여형(女兄)과 여제(女弟)’가 더 있었으며, 그 또한 ‘남녀’가 공용하는 말이었음을 ‘중문대사전’ 등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고, 우리 자료 ‘조선왕조실록’에는 더욱 그러한 용례가 흔하였다. 참고로 ‘이아석친’에서 ‘남편의 자매(夫之姊妹)/시누이’를 일컬어 ‘女公/女妹’라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여자 형제’끼리를 ‘자매 혹은 여형제’로 표현한 경우를 몇 가지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태종 11년 윤12월 23일 계묘
≪경제육전(經濟六典)≫ 오복(五服)의 제도가 ≪문공가례(文公家禮)≫와 같지 않아서 인정에 맞지 않는 것이 네 가지입니다. ……, 셋째는 ≪가례(家禮)≫에 무릇 여자가 친정에 있으면 복이 남자와 같은데, 지금 ≪육전(六典)≫에는 이성(異姓) 형제는 시마를 입고 자매는 복이 없으니, 원컨대, 지금부터 이성(異姓) 사촌 자매도 시마를 입고 출가하면 복이 없게 하소서.(其三,≪家禮≫,凡女子在室,則服與男子同,今≪六典≫異姓兄弟服緦麻,而姊妹則無服.願自今異姓四寸姊(姝)[妹],亦服緦麻,出嫁則無服.)
세종 3년 6월 17일 무신
이방간(李芳幹)의 딸 성혜옹주(誠惠翁主), 신혜옹주(信惠翁主) 등이 신소(申訴)하기를, “일찍이 홍주(洪州)에 명하여 월료(月料)를 주도록 하였으므로, 아버지와 형 맹종(孟宗)과 시집가지 않은 여제(女弟) 등이 모두 이에 힘입어 생활하였는데, 4월에 아버지가 돌아간 이후부터는 그 월료를 주지 않으니, 아버지 빈소(殯所)에 조석으로 올리는 상식(上食)도 여러 번 궐했을 뿐 아니라, 형제자매의 구량(口糧)도 이어가지 못합니다.”라고 하니, 그전대로 월료를 지급하도록 명하였다.(芳幹女誠惠翁主,信惠翁主等申訴:“曾命洪州給月料,父及兄孟宗,未適人女弟等咸賴此存活.自四月父歿以後,不給其料,非惟父殯朝夕屢至空匱,兄弟姊妹口糧不繼.”命依舊支給.)
세종 3년 6월 25일 정사
≪예(禮)≫에, 부인은 낮에 뜰에서 놀지 아니하고, 연고 없이 중문에 나오지 아니하는 것은 부도(婦道)를 삼가는 소이입니다. 본조(本朝)의 ≪경제예전(經濟禮典)≫에, ‘양반의 부녀는 부모·친형제·자매(姉妹)·친백부·숙부(親伯叔)와 고모, 친외삼촌과 이모 외에는 가보기를 허락하지 아니하고, 어기는 자는 실행(失行)으로 논한다.’고 하였다.(禮,婦人晝不遊庭, 無故不出中門, 所以謹婦道也.本朝≪經濟≫,≪禮典≫內:““兩班婦女,除父母,親兄弟,姊妹,親伯叔,姑,親舅,姨外,不許往見,違者以失行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