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世代) 통합의 친속 호칭어, 지칭어
일본 사람들은 ‘숙부모’를 일컬어 ‘오지, 오바’라 하는데, ‘조부모’를 ‘오지이상, 오바아상’이라 하니, 단어의 기부(基部)가 두 세대에 걸쳐 동일하다.
おじ(伯父, 叔父)-백부/숙부
おぼ(伯母, 叔母)-백모/숙모
おじいさん(お祖父さん)-조부
おぼあさん(お祖母さん)-조모
또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우리가 친속 아닌 사람으로 ‘어저씨/아주머니’라고 하는 모든 대상을 일본인들도 ‘おじ, おぼ’라 하고, 우리가 친속이 아님에도 ‘할아버지/할머니’라 하는 세상 사람을 또 ‘おじいさん, おぼあさん’이라 하거니와, 필자는 현대 국어에 이르러 갑자기 ‘할아버지/할머니/아저씨/아주머니’가 친속 아닌 사람을 호칭, 지칭하는 용도로 바뀐 연유가 필시 이와 같은 일본어의 영향이 컸으리라 믿는다.
위처럼 아래/위 두 세대를 통합하여 한 가지로 된 친속 호칭어, 지칭어를 쓰는 예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보는데, 우리 국어에서도 비슷한 예를 숙항(叔行)인 ‘이모부, 고모부’와 동항(同行, 兄弟行)인 ‘형부(兄夫)’가 통합된 호칭어, 지칭어로 나타나는 데에서 보게 된다.
특히 그러한 예는 경북 지역에서 현저한데, 전통적으로 남녀가 모두 ‘이모부, 고모부’를 ‘새아제’이라 하고, 처제가 형부(兄夫)를 또한 ‘새아제’라 하였다. 특히 재미있는 현상은 ‘처제’가 ‘형부’를 대하여는 한 항렬을 높이는 데 비하여, ‘처남(妻娚)’은 ‘자형(姊兄)’을 ‘새아제’라고도 하지만 한편으로 ‘새형’이라 하여 세대간 통합 호칭, 지칭을 피하고자 하는 예 또한 있다는 점이다.
‘이모부, 고모부’를 ‘새아제, 새아젬’이라 하는 예는 별반 문제가 없어 보이나, 처제가 형부를 일컬어 한 항렬 높이는 ‘새아제’를 쓰는 것이 이상해 보인다. 그러나 그 현상은 다음에서 보듯이 고전어에서 벌써 나타나 보이므로 특정 지역의 방언 성격 탓만은 아니라 생각된다.
<참고> 시아자비 대접하기를 능히 그 정성과 공경을 다하니라. <新續三綱行實圖, 烈四, 2>
이 현상은 시동생(媤同生), 시숙(媤叔)이 ‘형수(兄嫂), 제부(弟婦)’를 호칭, 지칭하는 말에도 옮겨져 ‘누나, 누이’에 해당하는 동항이며, 영어권 사람들이 ‘sister in law'라 함에도 불구하고 한 항렬을 높여 ‘아지메, 아주머니’라 함 또한 상식으로 되어 있다. 어떤 이는 ‘남편의 형’이 동항인데, ‘아자비숙(叔)’자를 쓴 것이 크게 잘못된 것이라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 고대의 이아석친(爾雅釋親)에서도 ‘夫之弟’를 ‘叔’이라 하였고, 형제의 배행(排行) 셋째를 ‘叔’이라 하며, 나아가 고유어에서 ‘남편의 형’을 엄한 내외법(內外法)이 작용할 대상으로 삼아 한 항렬 높여 ‘아자비’라 하였으므로 한국한자어가 그것을 반영하여 당연히 ‘叔’으로 쓴 것이니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더욱이 한국한자어 ‘시숙(媤叔)’은 1781년(정조 5, 신축)에 간행한 추관지(秋官志)에도 나타나니 당당한 고유 어휘이며 법률 용어로 대우받았음을 알 수 있다.
<참고> 秋官志 3, 考律, 雜犯, 誣訴媤叔>-鎭安金女,不思媤叔之誼,誣訴官家,卒令其叔石才,飮毒致死.
학자들은 경북 지역 언어에서 위에 보는 바 세대 통합 호칭어, 지칭어가 나타난 까닭을 ‘형부와 처제’ 사이의 엄격한 내외법(內外法) 때문인 것으로 보았다. 곧 법률상 ‘동항’인 사람을 일부러 친족 관계어를 통하여 한 세대 간격을 띄어 놓음으로써 서로간이 조심해서 대해야 할 어려운 사람으로 생각하게끔 그리하였다고 믿었다.
그런 사고방식 탓으로 아직도 특히 경북 지역 연로층은 다음과 같은 언어 예절, 습속에 밝은 편이다.
① 옛날에 혼인하지 아니한 처제인 경우 처가에 가도 중문 미닫이를 격(隔)하여서만 말을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② 옛날에 처제가 치마를 두를 나이만 되면 ‘해라’말을 하지 않고 경어를 썼었단다.
③ 지금도 연로층은 많이들 ‘처제’에게 경어로 말한다.
④ 지금도 연로층은 많이들 ‘처질녀, 처질부’에게 경어로 말한다.
⑤ 지금도 연로층은 많이들 ‘처이질녀, 처이질부’에게 경어로 말한다.
이 때의 ‘처제, 처질녀, 처이질녀’는 물론 미성인을 포함한다.
⑥ 지금도 연로층에서는 ‘처제가 장모로 된 이야기, 시아비이던 사람이 며느리이던 여자의 사위로 된 이야기’ 등 옛이야기를 즐겨 한다.
⑦ 물론 나 또한 그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