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象圖)

 

한반도 지도를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문제는 한민족의 자존심과 관련된다.

일제시대 일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가 토끼에 비유하는 등 의도적으로 한민족을

깎아 내렸다. 한민족이 대대로 토끼처럼 힘 있는 자에게 순응하여 살아왔음을 암시하고자

하는 뜻이었다.

 


이 같은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한민족의 진취적 기상을 드러내는 호랑이 모양으로 한반도를

그린 이가 바로 육당(六堂) 최남선(1890∼1957년) 선생이다.

그는 1908년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 '소년’ 창간호에 실은 ‘봉길이 지리공부’란에

한반도 모양을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로 형상화 했다.

오래 전에 일본의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가 이렇게 적었다. '한국지형의 윤곽은 한

마리의 토끼와 흡사하다'고 말이다. 그래서 다들 그런 줄 알았다. 흔히 영일만의

장기곶을 일컬어 별다른 거부감 없이 '토끼꼬리'로 간주했던 것도 그 탓이었다.


 

그런데 십 수 년 전부터 이는 잘못된 내용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러한 인식은 차츰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토끼'의 자리는 '호랑이'가 대신했다. '토끼꼬리'는 동외곶(冬外串),

장기갑(長鬐岬)에서 '장기곶(長鬐串)'을 거쳐 2001년 12월에는 호미곶(虎尾串)으로 거듭 이름이

고쳐졌다.


요즘 들어 '태백산맥(太白山脈)'의 자리를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대체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우연찮게도 '태백산맥'의 개념을 처음 정립한 이도 역시 '고토 분지로'였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고토 분지로의 발상에 처음 반발한 이는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었다.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수록된 것으로 유명한

<소년(少年)> 창간호(1908년 11월)에 바로 그 내용이 들어 있다.

'봉길이(鳳吉伊) 지리공부(地理工夫)'라는 글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음직한 '맹호(猛虎)' 그림이 등장한다. 동아시아 대륙을 향하여

할퀴며 달려들 듯 한 호랑이의 모습으로 그려진 한반도 지도 말이다. 열아홉 살짜리 최남선의

발상치고는 참으로 기발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가 눈에 거슬린다.

글의 내용 가운데 '일본해'도 토끼처럼 생겼다고 하는 대목에서

'일본해(日本海)'라는 용어가 거듭 등장한다.

이왕에 문제를 지적하려 했다면 이것도 마저 좀 짚고 넘어 가는 것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오른쪽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온 호랑이 지도이다.

옛 만주땅을 포함하여 컴퓨터그래픽으로

표현한 지도가 마음에 든다.

 
이 땅을 호랑이로 비유하여 그 용맹스런 기상을 표현하고자 했던 그림이 있습니다.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象圖)'입니다.

'근역강산'은 학교에서 배운대로 '무궁화가 피어있는 땅'인 우리나라를 말합니다. '맹호'는 용맹스런 호랑이를 뜻하겠죠. '기상'은 기운의 상징, 표상 뭐 이런 뜻이 될 것 같군요. 전체적으로 '우리나라를 용맹스런 호랑이의 기상으로 표현한 그림' 정도가 될 듯 합니다.

고대TODAY 2003년 겨울_제16호에 다음과 같은 설명글이 실려있군요. 참고로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옮겨 싣습니다.

"우리나라의 형태를 호랑이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지도이다. 백두산 부분을 호랑이의 머리부분으로 표현하여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함경북도 두만강 일대를 앞다리 오른발, 평안도 강계지역을 앞다리 왼발, 황해도를 뒷다리 오른발, 전라도를 뒷다리 왼발, 변산반도 일대를 꼬리 끝, 백두대간을 등줄기와 등뼈로 묘사하였다. 제주도와 대마도, 울릉도와 독도는 별도의 채색과 방식으로 바다에 그려 당대인의 영토의식이 투영되어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형상을 동물에 비유하지 않고 서 있는 사람의 모습과 닮았다고 이해하였다. 그러나 구한말에 이르러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의 형상을 토끼에 비유하자 최남선이 <조선상식문답>에서 우리나라의 형상을 호랑이로 비유하기도 하였다. 이 지도는 구한말에 이러한 내용을 지도화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형상을 사람이나 호랑이에 비유하는 것은 국토를 생명체로 생각하는 전통적인 사고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46×80.3 cm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좀 더 깊이 있는 읽을거리를 원하는 분들을 위해 우리나라의 모양을 토끼로 묘사하여 최근까지 그렇게 인식하도록 만든 고토분지로의 글을 잠시 옮겨봅니다.

"이태리는 외형이 장화(長靴)와 같고 조선은 토끼가 서 있는 것과 같다. 전라도는 뒷다리에, 충청도는 앞다리에, 황해도에서 평안도는 머리에, 함경도는 어울리지 않게 큰 귀에, 강원도에서 경상도는 어깨와 등에 각각 해당된다.

조선인 사이에는 자신의 나라 외형(外形)에 대해 가상(假想)의 모습이 있다. 그들은 "형태는 노인의 모습이며, 나이가 많아서 허리는 굽고 양손은 팔짱을 끼고 지나(支那)에 인사하는 모습과 같다. 조선은 당연히 지나에 의존하는 게 마땅하다." 라고 여기고 있는데, 이 같은 생각은 지식계급에 깊이 뿌리 박혀 있으며 일청전쟁(日淸戰爭) 후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백두대간 두걸음' 메뉴의 '고토분지로와 <조선산악론>참고)

이 글 중

'조선인 사이에는 자신의 나라 외형(外形)에 대해 가상(假想)의 모습이 있다. 그들은 "형태는 노인의 모습이며, 나이가 많아서 허리는 굽고 양손은 팔짱을 끼고 지나(支那)에 인사하는 모습과 같다. 조선은 당연히 지나에 의존하는 게 마땅하다." 라고 여기고 있는데, 이 같은 생각은 지식계급에 깊이 뿌리 박혀 있으며'

라는 내용은 사실 약간 과장된 표현을 하기는 했지만 크게 문제 삼을 부분은 아닙니다. 1700년대 중반에 나온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천지문'중의 '동국지도'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일반적인 정황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이러한 내용은 거의 같은 시기에 나온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비슷한 문구로 등장합니다.

"대체 우리나라의 지형은 북쪽은 높고 남쪽은 낮으며 중앙은 빨고 아래쪽은 파리하다. 백두산은 머리가 되고, 대령(大嶺)은 등성마루가 되어 마치 사람이 머리를 기울이고 등을 굽히고 선 것 같다. 그리고 대마도(對馬島)와 제주도[耽羅]는 양쪽 발 모양으로 되었는데, 해방(亥方)에 앉아서 사방(巳方)으로 향하였다고 하니, 곧 감여가(堪輿家)의 정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토끼로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여기에는 어떤 저의가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발끈한 최남선 선생은 1908년 11월에 발행된 '소년지(少年誌)' 창간호에 실려 있는 '봉길이(鳳吉伊) 지리공부' 난을 통해

"우리 대한반도는 맹호가 발을 들고 허우적거리면서 동아대륙을 향하여 나는 듯 뛰는 듯 생기있게 할퀴며 달려드는 모양을 하고 있으니, 그것은 곧 이 땅의 생왕하면 서도 무량한 원기(元氣)와 진취적이면서도 무한한 팽창발전을 의미하는 것인 즉, 어찌 소년들이 이 그림을 통하여 더욱 굳고 단단한 마음을 가지지 않겠는가"

라고 하여 바로 반박을 하게 됩니다.(<조선상식문답>의 내용은 추후 확인하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일제 식민지배하에 들어가면서 교육은 그들의 입맛에 맞게 이루어졌고, 해방이후에도 이런 부분들에 대한 철저한 반성없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아직도 이 땅을 '토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게 된 것입니다.

백두대간의 부활과 근역강산맹호기상도가 우리에게 다시 다가온 것은 비슷한 세월과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언젠가는 주인자리를 찾아 쉴 날이 오겠지요.

한 마디 덧붙인다면, 고려대학교의 상징이 호랑이라서 이 그림을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듯 한데, 몇 년 전 그림을 볼 수 없을까싶어 문의를 했더니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어서 일반에게 공개할 수 없습니다.'는 답변이 왔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상황인지... 혹시 고려대학교와 관련 있는 분들은 소식을 좀 전해주세요....

 

< 출처 : 백두대간 첫마당 >
 http://blog.naver.com/tnstn96/80034064537